퇴근하고 양재천을 조금 걸었습니다.

사실 저에게 이 양재천은 낯선 장소가 아닙니다. 현역군인으로 복무하던 시절 제 부대가 여기 근처였답니다. 심지어 그 시기가 G20정상회담이 진행되던 시기였던지라 부대 내에서 근무하지않고 서울주요지역을 순찰하고 경계를 서곤 했었죠. 주로 순찰돌던 장소도 시민의 숲과 양재역이었습니다. 이사하고나서는 머릿속으로만 생각이나고 실감이 나지는 않았는데 밤중에 그 길을 걷고 10년이 넘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던 시설과 건물들을 마주하니까 그 때 그 순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실 군인시절이라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살면서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은 장소 중에 하나로 꼽은 장소가 여기였는데 어느새 담담하게 이 장소에 다시 서게 되었네요. 제 인생에서는 비슷한 경우가 꽤 있습니다. 호주에 있던 당시에도 그랬습니다. 저는 호주를 20대 중반 그리고 20대 후반 이렇게 텀을 두고 살았었습니다. 20대 중반 호주를 떠날 때만해도 모든 게 싫고 정나미가 떨어진 호주였는데 막상 20대 후반에 다시 그 장소와 건물들 거리를 거니는 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더라구요.

졸업한 모교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졸업할 당시까지만 해도 저는 오히려 학교를 싫어하는 편에 속했습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했죠. '이놈의 학교, 내가 다시 오나 봐라' 그런데 또 어느 순간에 학교 근처에 가게를 열게 되었죠. 조금 웃기지 않나요.

이런 순간들이 반복되다보면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혹은 인생에 절대적인 건 없다는 뭐 그런 생각이요. 너무 싫어하던 장소나 사람 등이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아지거나 오히려 좋아질수도 있다는 생각들도 하지요. 물론 시간이 지나도 여전한것들도 많지만요. 그렇기에 왠만하면 지금 너무 싫은 상황이나 장소, 사람도 기를 쓰고 싫어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흘러갈수도 있고 바뀔수도 있을테니까요.

여러분도 만약 그런 것들이 있다면 조금은 가볍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딱히 좋아할 필요까지는 없구요. 싫어하는 것이나 상황을 계속 싫어해도 좋습니다. 다만 너무 기를 쓰고 그러지는 맙시다. 그러기에는 지금 당신의 에너지가 아깝잖아요. 이왕이면 좋아하는 것들을 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신경해지는 그런 상태로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