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차를 탈 때마다 나에게는 신기한 것이 있었다. 차가 나아갈 뱡향으로 깜박거리는 초록색 방향빛. 어린 마음에는 그 방향지시등이 일종의 자동차의 특수기능(어릴 적에는 자동차라는 것 자체만으로 대단하니까) 나아가 인공지능 같은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성인이 되어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뒤로는 그 방향지시등이 운전하는 이의 부지런한 손놀림이며 사람에 따라서는 잘 반짝이지도 않는 단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린 그 노동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 그 신기한 감각은 잊혀지지 않는다.

비슷한 일로 나는 브리타 라는 간이 정수기를 사용하는데 정수필터를 사용해서 수돗물을 정화해 먹는 도구이다. 그 위 쪽에 필터의 수명이 표시되는 등이 있다. 처음 사용할 당시(이 도구를 처음 쓴 건 호주에서였다)에는 그 센서가 작동되는 원리가 무척이나 신기했달까. 혼자서 머리속으로 여러가지 궁리를 했다. 필터가 거른 물의 양을 자동으로 계산해서 한 100리터 정도 정화할 즈음에 교체를 하는, 이 작은 도구 안에 그런 최첨단 설계가 되어있는걸까.

지금은 안다. 필터수명센서를 리셋하면 그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수명이 바뀐다는 것을.(사용양과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거다. 세상에 내가 어렵게 느끼거나 신기하게 느껴지는 일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내게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거라는 것.(반대로 내가 어렵고 신기하게 느끼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일테지) 그리고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