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날씨가... 물 속을 걸어다니는 것 같은 하루였습니다. 같은 한국이라도 지역마다 느끼는 부분은 차이가 있었겠죠? 저는 서울 강남대로 한복판을 주로 다니는데 입고 있는 셔츠가 바다 속에서 미역이나 해초 같은 것이 몸에 휘감겨서 걸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짜증이나 불쾌지수가 올라올 것 같으면 그냥 아무 생각을 안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오늘 걸으면서는 항상 아무 생각을 하지 않고 다녔습니다. 쉬는 시간에 근처 카페에서 에어컨 바람에 몸의 습도가 낮아지면서 점점 의식이 살아나기 시작했네요.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책을 조금 봤어요. 사람이란 환경에 참 민감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습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몸이 적응했기 때문에 짜증이 덜 할까요? 아니면 실제로 그 사람들은 짜증스러운 성격일까요. 알 수 없네요. 외국에서 만났던 그런 지역 친구들은 대체로 성격이 온화한 편이었는데, 어쩌면 자기 나라가 아닌 건조하고 청량한 나라에서 지내게 되면서 성격이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일은 오후 즈음에 대구 경북 지역은 비가 그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침과 동시에 열대야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니 뭔가 어느 쪽으로든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비가 오고 난 후에는 약간의 그늘짐을 예상하겠지만 바로 해가 쨍쨍할테니 대비하세요.

왠만한 취향이 아니고서야 비가 오는 순간에 비를 홀딱 맞아서는 비를 좋아할 수 없다.

비오는 순간을 좋아한다는 건

나를 지켜주고 있는 어떤 것, 빗방울과 마주치는 우산의 작은 울림,

비를 막아주는 천막 혹은 지붕 등을 자각한다는 의미와 같다.

창이나 문 너머로 내리는 비를 가만히 바라보고 느껴보면 빗방울이 지면과 닿는 감각이 어느새 새롭다. 흙밭에 비가 내릴 때와 아스팔트 바닥에 비가 내릴 때의 소리가 다른 것을 생각해본적 있는가. 흔히들 말하는 자연이, 흙밭이 더 좋다는 이야기를 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저 다른 소리가 난다. 어떤 때는 조금 거칠게 흩어지고 소리내는 아스팔트가 더 좋을 때도 있다. 기분에 따라 다를 뿐이다.

이전에 비가오면 생각나는 노래로 프롬의 ‘그대야’를 이야기한 적 있는데 프롬을 알기 전, 그러니까 내가 20대 즈음에 노래를 들을 때는, 비가 오면 다른 가수를 떠올렸다. 생각이 나서 검색해보니 발매된 지 10년이 지난 가수의 노래.

김예림의 ‘Rain’

굉장히 직관적인 제목이라서 당연히 비가 오면 떠오를 거 같지만 그 이유보다는 곡 자체에 스며들어 있는 잔잔한 습기 때문에 더 생각이 난다. 가수의 목소리에 습기가 잔잔히 배여 있는 느낌이다.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노래를 통해서 개인이 어떤 공감과 위로를 얻고자 한다면 누군가의 추천보다 괜찮은 방법이 본인과 같은 성별의, 같은 나이대의 (적어도 그 곡을 발매할 당시의 나이와 본인의 지금 나이가 비슷하게) 가수의 곡을 듣는다면 좀 더 쉽지 않을까.

음악이든 문학이든 시간이 지나면 더 나은 작품을 만들 가능성이 있겠지만 청춘의 나이대에 쓰게 되는 어떤 감각적이고 날 선 작품들은 그 시절이 아니면 쓸 수 없다. 그 시절의 작품은 뭐랄까 훗날을 기약하지 않는, 나중에를 생각하지 않는, 타서 하얗게 재가 되어버리는 그런 것들이니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 먼 북소리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