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주말이었어요. 비가 계속 내렸어요. 아마 내일도 비가 오겠죠. 모두들 기분이 다운되시나요.

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사실 저는 비가 오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비가 와서 더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반대로 날이 너무 쨍하면 집에만 있고 싶어진답니다) 음식점이든 카페든 밖에 떨어지는 비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어요.

왜 좋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비가 오면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격리된 듯한 어떤 공간적인 느낌일까요. 아니면 밖에 내리는 빗소리로 다른 소음들이 묻혀서 일까요. 눈 앞의 도로가 혹은 공기가 깨끗히 씻겨내리는 느낌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저는 그래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굉장히 미안하게도 말이죠. 

내일도 내리는 비에 여러분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가게에서 였다면 따뜻한 커피라도 손에 쥐어주었을텐데... 아쉬움이 남네요. 그건 못하더라도 주말동안 제가 주워놓은 여러 문장들을 들려드릴게요. 조금 더 다채로운 하루 보내시길.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은 대부분 가볍게 읽기 좋다고 한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일단 전체적인 소설들의 분량으로만 본다면 가볍게 읽기 좋다. 나 역시도 한 권의 책을 읽는 데에 3시간 남짓이 걸렸다. 다만 어떤 책을 가볍게 읽기 좋다거나 '이렇게 가벼운 책은 소설이 아니다'(일본문학계의 주장이었습니다)라는 말은 좀 너무하다. 하루키의 책들에 대해서도 일본문학계에서 이런 건 소설이 아니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것들만을 문학으로 치는지.

요컨데 이런 류의 소설들은 세상이나 시대 같은 것들보다는 등장인물 개인의 내면에 집중되어있다. 시대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고민하고 방황하고 길을 찾아 나서는. 그런데 막상 당사자가 된다면 내면의 문제가 세상이나 시대보다 더 큰 문제가 아닐까. 더없이 무거울 수 있다. 타인의 고민이나 문제를 본인의 기준으로 판단하려고 드는 순간부터가 세대분리의 순간, 꼰대가 된다.

막상 '키친'이라는 제목과 내용은 큰 연관점은 없었다. 다른 제목이었어도 큰 어색함이 없었을 정도. 그럼에도 어떤 공간이 누군가를 판단하는 기준이되기 좋다는 생각은 공감했다. 옷이나 패션 등으로 누군가를 판단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패션은 어느 날 어느 기분에 의해서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니 시간을 두고 관찰하지 않으면 너무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게 된다. 반대로 그 사람의 작업실이나 집 등을 살펴보면 (혹은 카페나 음식점도 마찬가지) 처음에야 어떤 의도된 모습이었다고 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주인의 습관과 생각이 공간에 묻어난다. 전체적인 느낌은 한두가지가 즉흥적이더라도 바뀌지 않으니까.

타인을 판단하고 생각하기에 앞서서 본인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어쩌면 나의 공간을 살펴보면서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내가 생각하는 나와 실제의 나는 거리가 있을수도 있다. 그럴 때 나의 공간을 제 3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정확한 나를 발견한다. 타인에게 묻거나 전문가에게 어떤 검사를 받는 것보다 실은 더 간단한 방법이 있는 셈이다.

다른 식으로, 내가 가고 싶은 방향과 실제의 내가 다른 형태로 놓여져있을 때 어쩌면 그 공간을 내가 가고 싶은 이상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면 실제의 나도 조금더 그런 사람으로 나아간다. 이런 방식은 생각하다보면 뭐가 닭이고 뭐가 달걀인지 알 수 없어지지만 결국에는 '의식-습관-행동'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적당한 거리에서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